작은 오두막에서 나는 소리

노래의 날개 위에

6살 쯤이었을까? 명절에 외갓집에 갔을 때, 할머니 앞에서 노래를 부르며 재롱을 부렸었다. 내가 노래 한 곡을 부른 다음에 사촌이 이어서 노래를 불렀다. “손이 시려워~ 발이 시려워~ 겨울 바람 때문에~”. 나한테는 칭찬을 안 해주던 할머니가 사촌의 노래가 끝나고는 사랑이 가득한 말로 칭찬을 했다. 어쩜 그리 곱게 노래를 하느냐고. 나는 그 칭찬이 질투가 나서, 방금 사촌이 부른 그 노래를 다시 불렀다. 그러고 나서도 할머니의 칭찬을 받은 기억은 없다. 다만 할머니의 당황스러워 하는 얼굴만이 살풋 떠오른다. 별로 예쁜 기억은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내가 노래에 욕심이 있었다는 거다. 아빠네 고등학교 동창회는 1년에 한 번씩 크게 열렸는데, 자녀들이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는 코너도 있었다. 나도 그러고 싶었다. 무대에 올라서 노래를 부르고 내 실력을 뽐내고 싶었다. 내가 딱히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저 난 알고있었다. 내가 적어도 쟤네보단 잘 한다는 거, 그리고 나는 노래를 부를 때, 정말 정말 기분 좋다는 걸.

그렇지만 사람들 앞에 나설 용기는 내지 않았다. 아빠에게 다음 동창회 때는 나도 나가서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말하지 않았다. 왜냐면 나는 얼굴이 이러니까… 앞에 나서면 주제 넘는다는 말을 들을까봐 겁이 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전학 간 초등학교는 정글 같았다. “너네 집 몇 평이야?” - 자기네 집보다 작은 평수에 사는 아이에게 ‘나는 너보다 우월하다’는 걸 말하기 위해 의도된 질문. 그런 재수없는 동네에서 나는 가장 눈에 띄는 조롱감이었다. 얼굴에 이상한 흉터가 있는 아이. ‘저런 애는 나보다 열등한 게 당연해’. 그런 저열한 의식에서 나오는 매일매일의 조롱과 멸시. 나와 짝꿍이 된 아이들은 울음을 터뜨렸고 다른 아이들은 그 마음을 이해한다면서 우는 아이를 달랬다. 이런 경험은 내가 노래 부르겠다고 무대 위에 오르지 못하게, 소위 ‘나대지 못하게’ 철저히 막았다. 앞에 나가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너 같은 게 무슨 그런 걸 하느냐는 조롱이나 당하겠지. 그런 것도 모르고 엄마는 다음 번에는 반장선거에 나가보라곤 했다. 속 터지게 진짜.

초등학교 6학년 때 칸노 요코라는 작곡가의 음악을 듣고 나서 부터, 나는 음악에 완전히 마음을 뺏겼다. 만화, 애니메이션 그리고 음악은 그 당시 나를 지독한 현실에서 탈출시키는 문이었다. 달콤하고 환상적인 꿈의 세계로 가는 문. 음악 안에서 나는 판단 당하지 않았고, 아무도 돌보지 않았던 마음을 위로 받았다. 내가 애써 울며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주던, 그런 음악들. 너무나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는 어느날 칸노 요코의 노래 가사를 프린트 해서 혼자 불렀다. Sora - Shanti Snyder(천공의 에스카플로네 OST). 그렇게 조용히, 나의 음악이 시작되었다. 대부분의 시간에 나 말고 아무도 없었던 우리집은 특히 도움이 되는, 안전요새였다. 그렇게 점점 프린트한 가사집이 두꺼워졌다. 적막하게 방치된 요새 안에서 보냈던 음악과 나, 우리 둘만의 시간. 그 기억을 나는 아직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그 작고 따뜻한 만남 이후, 우리는 깊고 무한한 우정을 쌓아갔다.

그렇게 계속 아무도 몰래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나는 꽤 노래를 잘하게 됐다. 계속 부르다 보면 모를 수가 없는 일이다. 하지만 역시 그 또한 비밀이었다.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됐다. 특히 엄마는 내게 이렇게 말했기 때문에. “너는 얼굴이 그러니까 절대 남의 눈에 띄는 직업은 가지면 안 된다.” 그런 잔인한 말에 반역할 만큼의 힘을, 그 당시 나는 가지지 못했다. 단지 점점 힘을 키우고 있었다. 어쩌면 그 모든 치욕과 모독을 이겨낼 힘이 바로 이것일 수 있다는 희미한 짐작을 가지고서. 무슨 언어로 된 노래든 나는 듣는 그대로 소리내었다. 수십번, 수백번을 반복했다. 반복한다는 인지도 없이. 아름답게 들리는 모든 소리를 그대로 똑같이 낼 수 있을 때까지.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학교에서 돌아오자 마자 뮤지컬 영화인 오페라의 유령을 돌려보며 같은 노래(The Point of No Return)를 계속계속 불렀다. 그럴 때면 5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가 있었다.

사실 그 시기 나는 지독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노래를 부를 때만큼은, 모든 근심걱정을 잊고 노래에만 집중했다. 너무 좋잖아. 그냥 너무 좋잖아. 내가 깊은 숨을 내뱉어 소리를 내면, 곧 아름다운 형태가 되어 내 귀에 다시 돌아온다. 고독하고 조용한 집안에 내 목소리만이 울린다. 오로지 너와 나만이 거기에 있었다. 처음엔 어설프고 자신이 없었어도, 계속 하다보면 능숙해진다. 마침내 아름다운 선율이, 내 목에서, 입에서, 공기로, 진동으로, 다시 내 귀로 흐른다. 만족감. 그 무궁한 만족감과 안정감. 전에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평온한 느낌. 나중에 알고보니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내쉬는 것에 마음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 숨에 더해진 아름다운 ‘나’의 소리. 노래가 지치고 슬펐던 나를 치유하고 있었다. 그것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못 느끼던 사랑이었다. 충만한 사랑. 나 자신의 노래에 스스로 감탄하기 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사랑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오래 감출 수는 없었다.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서양 가곡을 배웠다. 박화목 작사, 채동선 작곡의 근대 한국 가곡인 ‘망향’과 죠다니의 ‘Caro mio ben’. 한 학기에 하나씩 배우고는 학기 말에 실기시험 - 노래 시험을 쳤다. 수업시간에 다함께 부를 때는 목소리가 섞여서 별로 티나지 않았다. 그러다 시험의 예를 들기 위해 선생님이 잘한다 싶은 아이들을 지목해 혼자 부르게 했다. 내 차례. 그 순간의 내 목소리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첫 소절을 부르자 마자, 교실 안 분위기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나는 분명 노래에만 집중하며 정면의 칠판을 응시하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내 피부가 분명히 느꼈다. 그 곤두선 털의 느낌. 음악적 감동이 주는 소름. 몇 분의 노래는 금방 끝났고 나는 달라진 분위기에 어안이 벙벙했다. 의외의 실력에 놀란 선생님이 당황한 목소리로 위엄을 세우려 숨 쉬는 곳이 틀렸다고 말했다. 그러자 어떤 아이가 “근데 목소리가 너~~무 예쁜데요?”라고 말했다. 수업이 끝나고 몇몇 아이들이 나에게 찾아와서 흥분에 젖은 말을 전했다. 이렇게 감동받은 적은 살면서 한번도 없었다는 말. 마법의 힘이었다. 어느새 내 노래는 마법의 힘을 갖게 되었다.

음악을 할 생각은 그 후로도 한참은 없었다. 같은 학년에 뮤지컬 배우를 지망하는 아이가 있다는 말을 듣고 속으로 부러워만 했다. 친구에게 내 노래를 녹음한 CD를 생일선물로 주고 싶었지만, 그 당시엔 집에서 컴퓨터로 녹음을 어떻게 하는 지도 몰랐어서, 그냥 포기했다. 대학에 가서는 가끔 친구들과 술먹고 노래방에 가서 깜짝 놀래키고, 즐겁게 해줬다. 여전히 혼자 있을 때 노래를 실컷 불렀다. 아파트에, 기숙사에, 온 동네에 쩌렁쩌렁 울리게. 그래도 아무도 시끄럽다고 꼽주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강가나 공원에서 혼자 노래를 하면 누군가 꼭 다가와서 정말 고맙다고, 감동받았다고 인사를 전한다. 이런 일이 매번 일어나는데 내 재능과 실력을 의심할 수는 없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마법의 힘을 단련했으니까. ‘가끔씩 마법의 힘으로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주 기분 좋다’. 하지만 아직은 용기가 안 났다. 신진 마법사로 등장해 사람들을 깜짝 놀래킬 용기가. 수치심을 딛고 나아갈 곳이 안전할 지, 아무도 보장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 길에서 겪을 모든 수모는 나 혼자 감당할 몫이었기에.

지긋지긋한 정신병은 어느 날 나를 자살시도 하게 했다. 깨어나고 나니 가족들이 온통 나를 한심하게 취급하고 내 인생이 망했다는 듯, 나를 포기했다고 그랬다. ‘나 이제 어떻게 살지?’하며 멍하니 있다가도 저절로 김윤아의 봄날은 간다를 부르던 그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노래를 해보자고 결심했다. ‘마법의 힘을 한번 써보자’. 그 길로 실용음악입시학원 원장 앞에서 Ella Fitzgerald의 Angel Eyes를 불렀다. 그는 첫소절을 듣자 마자 감탄하며 “너는 다르다. 분명히 잘 될 거다.”라고 했다. 그때의 내 기분을 그대로 대변하는 곡이 있다. 뮤지컬 위키드의 “The Wizard and I”. 주인공인 초록색 마녀 엘파바는 살면서 처음으로 자기 마법의 힘을 인정받고 이 노래를 부른다. “나 혼자 숨겨뒀던 이 이상한 힘이 오즈의 마법사를 만나게 하는 기적의 힘이라고? 내가 선택 받은 자라고? 마법사는 너무나 감동해서 내 모습을 바꿔줄거야, 내 피부는 더이상 초록색이 아닐거야!”. 흥분에 젖은 채 부르는 희망의 노래. 그런 마음으로 음악을 시작했다.

원망할 것이 없다. 이제 더이상 프로 음악가가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가수로 활동하기 위한 10년을 겪어내고 내린 결론이다. 위키드 속 이야기 처럼, 마법사는 사기꾼이었다. 내 힘을 알아보고 나를 자신의 후계자로 키워줄 마법사 같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마법의 힘을 가지고 있는 걸. 그래서 지긋지긋한 것 세가지만 끝내기로 했다. 1) ‘나는 얼굴이 이래서 안 돼’ - 그 어떤 오디션에도 가지 못하게 한 외모의 저주. 2) 수많은 기회를 잡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3) ’좀더 노력 했으면 됐을텐데, 게을러 빠져가지고!’하며 나를 미워했던 것. 이것들만 끝내고 나는 계속 노래할 것이다. 노래는 나 자신이고, 음악과 나는 ‘너는 나, 나는 너’인 관계인 지 오래됐기 때문이다. 숨이 끊겨 더이상 소리를 못 내기 전까지, 나는 마법의 힘을 부릴 수가 있으니까. 그리고 그건 사랑의 힘이니까.

여창가곡 우조 이수대엽 ‘버들은’. 베를린 템펠호퍼 펠트 공원에 아침마다 가서, 그 탁트인 대지에서, 이 노래를 혼자 부르고 익혔다. 10여년 전에 국가무형문화재 가곡보유자인 선생님께 한번 일반인 강습을 받은 적이 있고, 그 외엔 그저 예전에 하던대로, 녹음 된 소리 그대로 똑같이 따라했다. 어차피 내게 노래하는 것, 노래를 배우는 것은 계속 그랬으니까. 선생님이 있었다면 좀 더 전통대로, 정석대로 배웠을 것이다. 어쩌면 나는 그때 그 선생님께 전통가곡을 진득하게 배웠어야 했을 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적어도 공인받은 국악인이 되었을 지도. 하지만 지금 내가 독일에서, 공원에서 혼자 노래하는데 그런 거는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놓쳐버린 것 같은 무수한 가능성에 안타까워할 필요 없다. 어차피 지나가며 내 노랠 들을 사람들은 그게 여창가곡인지 뭐시기 무수리인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저 그들은 마법의 힘을 얻고 간다. 사랑의 마법을. 공기로 퍼지는 사랑의 진동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