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오두막에서 나는 소리

외모정병이여, 성불하시오

이렇게 쉬운 거였나. 추하다고 경멸당하던 내 얼굴이 예쁜 얼굴이 되는 것이. 여기는 베를린. 이곳 사람들은 나를 보며 곧잘 ‘예쁘다’고 한다. 내가 동양인이라 자기들 미의 기준에서 완전히 벗어났기 때문에 그렇게 말 할 수도 있다. 이국적인 이목구비가 특이해서 더 예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명확히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따로 있다. 얼굴 흉터. 이곳 사람들 그 누구도 내 얼굴의 흉터를 ‘지목’하거나 ‘언급’하지 않는다. 사실 그걸 인식하지도 못한다고 까지 느껴진다. 하지만 또 완전히 그런 건 아닌 거 같다. 내가 스스로 흉터 얘기를 꺼내서 삶의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아, 그거’라는 식으로 반응한다. 그러니까 아예 모르진 않는다는 거다. 그렇다면 이게 무슨 뜻인가? 이들은 내 얼굴의 흉터를 보고도, 예쁘다고 생각하는 거다. 내 얼굴의 모든 것, 생긴 그대로의 모습, 한국에서는 ‘이상하다, 무섭다, 괴물같다, 추하다’라고 여겨졌던 흉터를 포함한 내 얼굴 그 모습 그대로가, 그들 눈에는 아름답게 보인다는 거다. 천지가 개벽할 일이다.

사실 내 흉터, 생긴 지 30년이나 되어서, 이제는 잘 보이지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고 직후인 2살 때처럼 사람들이 바로 반응하지 않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은 베를린에 살고 있음에도, 한국인은 다르다. 한식당에서 일할 때, 주방 요리사인 20대 한국남성은 나를 본 첫날에 ‘무섭게 생겼다’고 했다. 사실 베를린 사람 뿐만이 아니다. 이제까지 한국에서 만난 온갖 국적의 외국인 섹스파트너들 중 그 누구도, 내 얼굴을 꺼리지 않았다. 말을 하지 않아도 그냥 안다. 내 얼굴이 섹스를 하고 성적인 끌림을 느끼는 데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으니까. 섹스상대로 만났을 때 나를 보고 움츠러드는 태도를 보이고 경계하는 사람들은 모두 한국인이었고, 한국인 뿐이었다. 다른 한식당에 면접을 보러 갔을 때, 사장이 내게 ‘눈은 왜 그렇게 된 거야?’라고 물었다. 초면에 무례하게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도 다 한국인이다. 독일에 산 지 오래인 이런 한식당 사장 조차 그렇다. 사는 곳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니다. 한국문화에 익숙한 ‘한국인’만 이렇다.

이러니 내가 한국 말고 다른 나라에서 태어났거나 자랐다면 그 수많은 수모를 겪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수모. 무슨 수모를 겪었을까? 일일히 열거하자면 끝도 없다. 수모라는 것은 보통, 악의적인 의도로 괴롭힘 당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근데 많은 사람들이 내 얼굴을 보면 악의 없이, 순수하게 본능적 차원에서 ‘이질감’을 느낀다. 그리고 그걸 숨기지를 못한다. 너무 본능적이어서. 예를 들면, 어린시절에 마트나 축제 같은 사람 많은 곳에 갔을 때, 종종 다른아이들과 눈이 마주치곤 했다. 그럴때면 아이들은 내 얼굴을 보고 순식간에 공포에 질렸다. 그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나를 빤히 쳐다보며 충격에 빠진 그 얼굴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걸 봤다는 듯이. 나는 그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리고 부모를 찾기 전에 얼른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전신을 뒤흔드는 감정을 버티면서. 그건 무슨 감정이었을까? 수치심? 치욕감? 내가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는 느낌? 모르겠다. 모르겠다. 모르겠다.

사람들은 내 얼굴을 싫어한다. 그것은 당연한 사실이 되었다. 굳이 유년시절 또래들에게 숱하게 조롱당하고, 경멸당하고, 모욕당하고, 왕따당했다는 에피소드를 열거할 필요가 없다. 내 얼굴은 추하구나. 사실 사고 직후 부터 알았지. 사실은 그 아이들이 왜 공포에 질렸는지도 알지. 나도 그랬거든. 엉망으로 기워져버린 얼굴을 처음 봤을 때, 나도 끔찍한 기분을 느꼈으니까. 이런 얼굴로 살아가야 한다는 게 너무 끔찍했으니까. 나도 내 얼굴이 싫어. 나는 더이상 아름답지 않아. 그것을 타인이 계속계속 확인시켰다. 더는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도. 그런 삶을 2살 때부터 살았다. 이런 걸 나 말고 다른 누구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탈출할 수 없는 지옥 같았거든. 거기에 더해 아무도 나의 이런 감정을 돌보지 않았고, 알려고 들지 않았다. 지독한 고독 속에서 고통을 홀로 버티기, 모욕과 수치를 견디기. 이 모든 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기. 그리고 그 누구도 나를 좋아하고 호감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동사고를 장착하기. 정말이지 모든 것이 얼굴 때문이었다. 지독한 정신병의 출발도.

얼굴이 나의 정체성이 되었다. 한때는 괴물의 정체성이라 이름 붙였다.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을 읽으며 피조물-괴물에게 얼마나 감정을 이입했는지. 그가 말하는 모든 것이 내 이야기 같았다. “내 겉모습은 이리 추해도, 안에는 사람이 있단 말이오. 지성과 미감을 가진 사람이! 왜 이걸 몰라주는 거요?”… 그렇게 나는 보통사람이 아닌 채로, 사랑받기를 포기한 채로, 자신을 괴물로 생각하는 채로 자랐고, 성인이 되고도 아주 오랜 기간동안 내 얼굴을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살았다. 특히 사진 찍는 게 끔찍하게 싫었다. 내가 찍힌 모습을 보면 거울을 보지 않는 동안 잊고 있었던 잔인한 진실을 다시 확인해야 했으니까. 평소엔 내 얼굴을 안 보니까 잊고 살 수 있는데. 왜 굳이 확인시키려 드는 거야. 사진 찍기 싫어하는 나를 엄마는 이상하고 이해할 수 없는 아이 취급했고, 못 마땅해 하며 나무랐다. 그 지독한 무심함. 핸드폰에 셀카 기능이 나온 후 나는 셀카를 자주 찍었지만, 셀카가 아닌 정면에서 찍힌 얼굴은 지독히 싫어했다. 셀카 모드는 거울상이지만, 정면 사진은 반전되어있으니까. 평생 거울을 보다보니 이제야 거울 속 내가 익숙해졌는데, 정면 사진의 반전된 내 얼굴을 보면 그렇게 기괴할 수가 없었다. 근데 그게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내 모습이라니!

어릴 땐 성형수술 받을 날 만을 기다렸다. 신데렐라가 요정의 마법으로 짠하고 변신하는 것처럼 , 나도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서 성형수술만 받으면 다시 원래 얼굴을 찾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얼른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러다 초등학교 6학년 때 드디어, 처음으로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수술 받으러 갔다. 하지만 의사와 자세한 상담을 했을 때, 내 환상은 무너졌다. 내가 가장 고치고 싶은 왼쪽 눈을 고칠 수가 없대. 다른 부위 피부를 이식해서 어둡고 주름지고, 다른 쪽 눈보다 큰데다 모양도 이상하고 눈썹도 사라져버린 그 눈을 어떻게 할 방법이 아예 없단다. 그 말이 내게 준 절망감이 마치 전기충격 같았는데,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다. 마음 같아서는 왜 안 되냐고 따져묻고 싶었는데 나는 아직도 너무 어린아이였어서 어른에게 화를 내고 따질 수 없었다. 거기다 더해, 안 되는 것을 되게 할 수는 없고 어떤 것은 영원히 포기해야 한다는 걸,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날 나는 다시는 내 원래 얼굴로 돌아갈 수 없다는 진실을 받아들이고, 마법의 힘으로 아름다워지는 꿈을 포기했다.

이런 내가 더더욱 괴롭게 되는 계기가 찾아왔다. 겨우 고된 어린시절을 버티고 나니, 성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청소년기에 누구를 좋아하는 마음을 가지면서도 단 한번도 내가 연애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안 했다. 누군가가 나를 사랑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자격미달이니까. 가끔 누가 나를 좋아하더라도, 그 아이들은 곧바로 스스로 그걸 수치스러워 했다. 나를 좋아하는 게 무슨 문제라도 되는 것처럼. 다른 아이를 좋아한다는 오해를 받으면서도, 나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끝내 공표하지는 않았다. 초등학교 때 아이들이 서로 사귄다는 소식을 듣고 속으로 비웃었다. 유치하게 어린애들이 뭘 안다고 사랑을 하느냐고. 하지만 사실은 내가 가질 수 없었기 때문에, 여우가 신포도 보듯 대한 거였다. 사랑받는 것을 포기했고, 또한 사랑 같은 것을 바라서도 안 됐다. 사랑 같은 거 필요없이 강하게 살아가기로 했다.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주는 일은 없고, 나에게 매력을 느끼지도 못할 테니까. 근데 그게 성인이 되고 난 후 잘 안 됐다. 대학에 가니 다들 연애를 하더라. 사랑 없이도 잘 살아야 되는데, 나도 사랑에 빠졌다. 상대가 나를 사랑하기를 감히 바랐다. 연애를 하고 섹스도 마구마구 하고싶었다. 근데 그게 나한테는 이루어질 수가 없는 일이잖아. 고백하고 차일 때마다, 내 사랑이 거부될 때마다, 확증편향이 강해졌다. 결국 이 이유로 나는 완전히 무너졌다.

나 자신이 너무 미웠다. 나는 사랑 같은 거 필요없이 살아야 되는데, 그게 안 되니까. 너무 수치스러웠다. 사랑 같은 거 바라면 안 되는데, 내가 나를 통제 못 하고 자꾸 분에 넘치는 걸 바라니까. 나 자신이 견딜 수 없어졌다. 나로 산다는 것이 지옥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살도 왕창 쪄버렸다. 아침 6시에 잠들어서 오후에 일어나는 일이 반복되면 그럴 수밖에 없다. 불면증에 시달렸지만 엄마는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언제나처럼. 명절 때마다 엄마는 왜 그렇게 살이 쪘냐고 나를 꾸짖었다. 이를 악물고 다이어트를 했다. 성공했다. 10키로 이상 감량을 3번 했고 2번 요요가 왔다. 엄마는 언젠가 ‘나는 네가 살 뺀다고 하는 말 믿지 않는다’고도 했다. 다시는 살 뺀다고 하지 말래. 왜? 살을 빼놓고도 다시 도로 찌니까 그게 무슨 소용이냐는 거다. 내가 살 뺀다고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데. 그건 하나도 몰라줬다. 살 찐 거 자체가 죄니까. 죗값을 치르는 건 당연하다는 식이다. 사실 나는 유전적으로 통통한 체질이라 아무리 체중을 감량해도 표준체중이 되지 않고 항상 살짝 과체중에 머물렀다. 이것 또한 지독한 문제가 됐다. 나는 합격이 될 수가 없었다. 한국사회는 자기 키-몸무게를 했을 때 적어도 110이 남아야 연애가 가능한 매력적인 몸에 부합한다고 여기니까. 난 거기에 도저히 도달할 수 없었고, 그래서 가장 쓰레기 같은 한남들 조차 업신여기는 하자품 취급을 받았다. 어느 정도였냐면, 섹스 번개를 하러 만났는데 ‘너무 못생기고 뚱뚱해서 안 되겠다’는 말을 듣는 정도. 그 남자는 대단한 외모도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떻게라도, 나 자신에게 느낄 수 없는 사랑을 채우려고, 아무에게나 사랑을 구걸했다. 그 방법은 인터넷으로 구한 아무 상대와 마구마구 섹스하는 거였다. 하지만 그런 방법은 내 수치심만 끝없이 불어나게 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 괜찮은 거겠지? 다 지난 일이겠지? 난 이제 아무도 날 괴물취급, 못생기고 뚱뚱한 하자품 취급을 하지 않는 곳에서 사니까. 나는 이제 안전한 거겠지? 더이상 이 주제로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겠지? 요즘은 더이상 내가 못나게 보이지 않는다. 30년 된 흉터는 희미해졌고 여러 번의 수술 끝에 좌우 불균형이었던 얼굴도 나름 가지런히 정렬되었다. 수술의 고통 쯤 참는 건 아무 일도 아니었지. 이제 너무 익숙해서 이 얼굴이 아닌 다른 얼굴을 가지고는 살 수 없을 거 같다. 비록 그게 멀쩡한 얼굴일지라도. 이게 바로 내 얼굴이니까. 좋든 싫든 이 얼굴로 살다보니 정이 많이 들었고, 당당하고 카리스마 있는 인상이 싫지 않다. 사실은 좋다. 내 얼굴이 좋다. 한번은 성형수술 받으러 미용성형외과에 갔는데, 성형 이후 모습의 예를 보고는 기겁을 했다. ‘저건 내 얼굴이 아니야. 저런 얼굴로는 못 산다’. 그렇게 생각해서 수술을 안 하기로 했더니, 의사와 엄마가 나를 미련하고 어리석은 주제에 고집불통인 취급을 했다. 집에 가는 길에 지하철에서 혼자 눈물을 흘렸다. 화가 나고 서러웠고, 무엇보다 너무 고독해서. 아무도 날 이해하지 못해서. 평생을 이래서.

하지만 이런 것들 이제 다 꺼졌다. 키-몸무게를 해서 85가 나오더라도 전혀 꿇리고 기 죽을 일이 아니다. 전혀 뚱뚱하지 않아. 그리고 엄마는 내 얼굴이 갸름할 때만 예쁘다고 했지만, 내 얼굴은 원래 동그랗고 보름달 처럼 크다. 어릴 때부터 그랬어. 전혀 이상하거나 못났지 않다. 운동을 열심히 하고 바깥 활동을 해서 자연스럽게 탄 내 피부도 전혀 못났지 않아. 엄마는 언제나 모자를 쓰고 썬크림을 바르라고 야단이었지만. 그 따위 말들 이제 다 개소리란 거 알아. 엄마가 수영장에서 날씬한 자녀와 사진 찍는 다른 아줌마를 부러워 해도, 나는 그딴 거 신경쓰지 않고 나대로 살아갈거야. 든든한 어깨와 등근육, 두꺼운 종아리와 튼튼한 허벅지는 나의 자산이다. 역도를 한다고 하니 뭐 그런 걸 하느냐고 타박하던 엄마는 제발 그만 꺼져버리라고. 두꺼운 뱃살이 다 보여도, 나도 여름엔 배 보이는 상의를 입고 내 매력을 뽐낼 수 있어. 외국인들 눈에 전형적인 동양인 외모라서 좋아라 하는 것에 기분 나빠할 것도 없어. 전형적인 동양인의 외모 또한 아름다우니까. 서양인 이목구비를 가지지 않았다고 해서 못나고 열등한 게 아니니까. 타고난 곱슬머리도 지저분 하긴 커녕, 너무나 아름다워. 어떤 사람은 내 머리를 가질 수 있다면 자기 손가락 하나를 잘라줄 수 있다고 하더라.

한국엔 광고판 모델들 모두 피부가 새하얗고 잡티하나 없다. 날씬함을 넘어 너무 말라서 안쓰러울 지경인데, 그게 선망의 대상이다. 완벽하게 좌우대칭인 얼굴에 커다란 눈과 오똑하고 높은 코. 케이팝 아이돌 모두 이렇게 생겼는데, 외국 팬들이 한국인은 백인선망이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지 않아? 정말 아니라고 할 수 있어? 길거리엔 온통 성형외과 광고. 저질스럽기 짝이 없다. 평범한 사람들이 그런 환상에다 자기를 끼워맞추다 그게 안 되니 자기를 싫어한다. 자기만 용서하지 못하면 차라리 다행이다. 그 분을 풀려고 남의 외모를 뜯어보고는 흉본다. 중안부가 짧니 기니 하는 한심한 말이 뷰티팁이라고 나돈다. 언제까지 환상을 좇으면서 자기를 미워하고 살 거야? 진심으로 모두에게 묻고 싶어. 미용전문 성형외과에서 대기할 때, 멀쩡한 얼굴 고치려고 내 옆에서 악착같이 몇시간을 앉아있는 너희가 진짜 미웠어. 그래 모든 걸 개인 탓 할 수는 없다. 카메라를 켜면 얼굴이 작아보이게 자동 보정이 되는 세상이니까. 나는 근데, 그거 거부하고 셀카 모드도 반전시켜서 정면으로 보는 걸로, 완전 기본형으로 바꿨어. 그래서 난 이제 정면에서 본 내 모습이 좋아. 너희는 나만큼 노력했을까? 나만큼 있는 그대로 볼까?

그러니까 절대로 돌아가고 싶지 않아. 그 지독한 외모지상주의 사회에서 내 위치는 언제나 낮은 곳이었다. 그런 취급을 받으려고 사는 게 아니다. 소중하게 여겨지고 예쁨 받으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고 아끼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다. 세상의 못생긴 부분을 지적하고 부풀릴 게 아니라, 눈에 잘 띄지 않는 아름다움을 일부러 찾으며 살아야 해. 그게 단 한번 뿐인 이번 생에서 채워갈 것이다. 더이상 남보다 못한 가족들에게 폄하당하지 않을 것이다. 인천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공항 대기실에서부터 보이는 그 가장 한국적인 가지런함, 완벽한 차림새가, 나를 숨막히게 한다. 한국어가 들리는 순간 소름이 끼치고 도망가고 싶어진다. 모두가 외모열등감에 시달리는 그 땅. 가장 보통의 모습을 저주하는 땅. 저질스러운 외모정병의 근원지이면서도, 자랑이랍시고 ‘케이뷰티’를 전세계에 팔아먹고 앉았다. 정식 병명으로는 ‘바디 디스몰피아-신체이형증’이라 불리는 병. 자기 외모를 실제보다 훨씬 못나게 인식하는 정신병이다. 내 삶을 숨 막히게 조이던, 보이지 않는 족쇄. 나는 이에 대해 더이상 생각하고 싶지 않다.

이 지독하고 고약하고 험한 것을 땅속 깊이 묻어버리고 장례를 치르고 싶다.

성불하시오.
성불하시오.

정념과 원한 모두 버리고,

훨훨 날아오르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