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예술가 되기와 예술하기
요즘 음악을 전혀 하고있지 않다. 단지 가끔 기분이 나면 노래를 부른다. 처음엔 지쳐서라고 생각했다. 베를린에 오고 나서 감당하기 힘든 시련을 겪었고 그래서 삶을 재정비 해야했다. 습관을 바꾸고, 마음을 가다듬고, 새로운 관계와 취미를 만들어서 안전기지를 확보하고. 그렇게 다시 되살아났다. 근데 음악활동은 되살아나지 않고 있다. 노래를 하면 여전히 재미있고, 쓰고 싶은 곡의 컨셉도 생각이 나는데, 감정적으로 많은 것이 얽혀있어서 음악을 할 만큼 여유있게 풀어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이 글도 정말 여러번을 고쳐쓰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제까지 음악을 하면서 아주 많이 괴로웠다는 것이다. 22살 부터 음악활동을 하려고 10여년 각고의 노력을 한 끝에 도달한 곳이 여기라니 허탈하다. 하지만 괴로움을 참으면서까지 억지로 해야할 일은 없다.
나한테 노래하는 건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일이고, 또 제일 쉬운 일이다. 청소년 시절, 노래 부르는 게 너무 재밌어서 5시간 씩 같은 노래를 반복해서 부르곤 했다. 노래연습을 5시간씩 한 게 아니라 너무 재밌어서 노래부르다 보니 5시간이 지나있었다. 그 시기에 나는 온갖 다양한 예술을 좋아했다. 음악, 만화, 애니메이션, 시각예술, 연극, 뮤지컬 - 이 모두에 한번씩 빠졌고, 나에게 예술은 무조건적으로 추구할 가치였다. 나는 언제나 흥미를 일으키는 공연이나 신곡, 트렌드가 뭔지 살폈고 예술적 경험에 삶의 의미를 뒀다. 예술 속에 푹 빠져 살면 행복해질 거라 생각했고 이 열정이 영원히 지속될 줄 알았다. 하지만 하루에도 몇십개의 예술 이벤트가 열리는 예술가의 도시 베를린에 살면서 나는 이제까지 중 가장 예술에 무관심해졌다.
사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예술이라고 인정받는 예술에 무관심해졌다. 먼저 나 자신이 더이상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예술활동을 하고싶지 않다. 가장 우선의 이유는 단순하다. 당장 먹고 살아야 되는데 음악을 해서 돈을 벌 수 없다. 그리고 돈이 되지도 않는데 굳이 음악으로 남들에게 인정받을 필요가 없다. 물론 돈을 벌려고 시작한 일은 아니다. 단지 지금은 상황이 예전과 다르다. 내가 독일에서 체류자격을 얻으려면 안정적 수입이 있음을 증명해야 되거든. 그래도 생각해보면 예전엔 돈이 안 돼도, 굶어죽는 한이 있어도 예술을 하겠다는 곤조가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증명받겠다는 마음이었다. 내가 진정한 예술가임을. 그 마음이 접혔다는 건 어떤 큰 의미가 있는 거다. 무슨 말이냐면, 돌고 돌아… 이제와서 사실은 이게 내 안에서 병을 일으키는 근원적 집착이었음을 깨닫게 됐다는 얘기다.
30년 묵은 정신병이 많이 나아버렸다. 외국에서 혼자 치명적인 위기상황을 겪고 나서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게끔 노력한 끝에 그렇게 됐다. 이제는 그냥 가만히 있어도 마음이 편하고 좋다. 예전엔 가만히 있으면 막 마음 속에서 개지랄이 나서(트라우마 트리거링이 되어서 PTSD를 겪었다는 건데 나는 이렇게 표현하는 게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그걸 토해내거나 위로받아야 했다. 이제 나는 그런 기억과 감정의 격동을 혼자서 혹은 적절한 도움을 받아서 어렵지 않게 가라앉힌다. 더 나아가 이제 그런 개지랄 자체가 잘 안 난다. 그러다 보니 예술충(대충 예술을 해야한다는 충동을 가지고 예술가가 되기를 집착하는 사람을 낮춰 이르는 말)의 원한발사 인정투쟁을 그만 둔 거다. 그게 음악을 안 하게 된 근본적 이유다.
왜 예술충은 예술을 하는가? 자기 마음 속의 깊은 원한을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집착 때문이다. 너무 단순화하고 단정적으로 말해서 위험한 발언이긴 하다. 방어를 좀 해보자면, 모든 예술가가 그렇다는 건 아니고, 내 경험상 꽤 많은 예술충들이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는 거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방식과 원인은 다양하지만 많은 예술충들이 자기 심연의 트라우마와 감정을 다루기 위해 예술표현을 한다. 그래서 (우울 같은 부정적 감정 뿐만이 아닌) 감정적 흥분상태에 처해야만 영감과 삘이 와서 창작욕이 솟는다는 말을 하는 젊은 예술가가 많다. 그게 없어지면 창작이 안 될 거 같아 무섭다는 얘기도 나오고. 나는 그런 말을 하진 않았지만 솔직히 계속 그런 상태에 놓여있었다.
내 원한의 시작은 어릴 적 ‘얼굴이 괴물이라 넌 인간이 아니다’라는 모욕적인 차별이었다. 초등학생이던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와 분노에 휩싸인 채 눈물을 흘리며 일기를 썼던 게 아직도 기억난다. ‘너희는 내가 추하다며 날 멸시하지만 나는 사실 진짜 아름다움이 뭔지 알아. 너희는 모르는 절대적 아름다움이지. 예술을 할 거야. 위대한 천재 예술가가 되어서 나중에 너희 자식들이 내 이름을 모두 알게 할 거야. 그때가 되어서도 날 무시할 수 있을까?’ 이런 내용이었던 게 똑똑히 기억난다. 일단 엄청 유치한데 또 엄청 비장해서 최종적으로는 안쓰럽다. 내가 이런 마음으로 예술을 시작했다는 걸 아무에게도 얘기 안 했다. 쪽팔리잖아. 악에 받친 마음으로 예술을 한다고 하면 누가 곱게 봐주겠나. 예술은 아름다운 건데, 사실은 못난 마음으로 한다는 걸 들켜서는 안 됐다.
20대 초반에 자살시도를 하고 났을 때도 비슷한 마음이었다. 가족들은 나를 정신과 치료 강제중단과 강제단약을 시켰고 고향으로 끌고 와 방치했다. 나를 금치산자라고 부르면서 정신이 온전치 않은 사람 취급을 했고, 내게 직접 “나는 이제 널 포기했다”는 말도 했다(진짜 씨발새끼들 천벌을 받아야돼). 그렇게 인생이 완전히 망했다고 여겨졌을 때도, 나는 혼자 있을 때 자연스레 노래를 불렀다. 눈물이 났다. ‘이렇게 돼도 나는 음악을 하는 구나. 그러면 난 이걸 하며 살아야겠다’라는 다짐을 했다. 그제서야 남들 앞에서 노래를 하겠다는 용기가 났다. 그전까지 나는 내 얼굴 때문에 무대에 설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넌 얼굴이 그러니까 사람들 앞에 서는 일은 하면 안돼”라고 말해서. 그런 수치심을 뚫게 만든 게 이런 생각이다 - ‘난 아직 못한 말이 너무 많아. 나는 세상에 할 말이 너무 많아. 이대로 아무 말도 못하고 억울하게 죽을 순 없어’. 그렇게 음악을 시작했다.
근데 이런 동기로 예술을 하면 그 과정에 마음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좋아서, 사랑해서 시작한 음악을, 이런 고통을 가지고는 순탄하게 지속할 수 없었다. 잘 해보려고 해도 안 되고 고꾸라질 때마다 내 속에서 자꾸 의심이 올라왔다. ‘나는 사실 엄마가 점쟁이한테 듣고 온 말대로 절대 예술가가 되지 못할 팔자인 게 아닐까? 안 되는 걸 억지로 하려고 하는 거 아닐까?’. 가족들은 말로 하진 않았지만 내가 예술하는 걸 탐탁치 않아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내가 왜 그렇게 까지 예술을 하고 싶어하는지는 절대 궁금해하지 않았다. 내가 죽으려고 했을 때도 왜 그랬냐고 묻지 않았던 인간들이다. 그들이 나를 알려고 했다면 이렇게까지 돌아오지 않아도 됐던 거 아닐까. 그렇게 했으면 정신병이 30년 발효가 아니라 13년 발효로 끝났을 거고, 나는 그들 바람대로 평범하게 살았을 수 있다. 근데 그게 안 됐다. 어쩔 수 없다.
20대 내내 음악을 하겠다고 어디가서 음악을 배우고, 작곡을 하고, 프로듀싱을 하고, 음원발매를 하려고 해도 뭐가 계속 잘 안 됐다. 근데 그게 외부의 평가나 반응이 안 좋아서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내 재능과 실력이 탁월해서 이대로 꾸준히 해내면 잘 될 거라고 했다. 그리고 내가 노래를 공개하면 조금일 뿐이라도 반응은 꾸준히 좋았다. 어디서든 노래를 하면 감동받았다고 찾아와서 한마디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에 힘 입어서 나도 잘 해보고싶은데 그놈의 ‘꾸준히’가 안 돼서 너무너무 스트레스였다. 그건 내가 스스로 내 안의 개지랄을 감당 못해서였다. 나 자체인 채로 혼자 가만히 있는 것이 정말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서 자꾸 충동적인 위험한 짓을 해야했다. 그게 내 병의 주요 증상이었다. 그렇게 창작에 집중하는 대신 중독으로 들어갔다.
잘 해보려다 자꾸자꾸 고꾸라지니까 정말 괴로웠다. 내가 뭐를 하고싶은 마음이 들면 반대급부로 스스로 자꾸 도망갔다. 내가 너무 비장했던 탓일까. 음악을 하는 데에 너무 많은 의미를 걸고 있었다. 너무 막대한 의미가 달린 ‘과업’을 해내는 게 부담스러웠고 또 그래서 도망가거나 개지랄이 나는 정신병이 되풀이 됐다. 이런 고통 속에서는 창작이 안 된다. 아니 사실 고통 속에서는 뭘 해도 안 된다. 일단 병부터 고쳐야 출발선으로 가는 건데 그걸 (씨발) 아무도 몰랐다. 어느정도 안정감이 있어야 사람이 공부도 하고 일도 하고 창작도 하고 하는 건데 매일같이 트라우마 기억이 떠오르고 그에 따른 감정으로 압도되는 사람이 뭐를 할 수 있겠나. 근데 아무도 이걸 병으로 취급도 안 해줬다. 정상참작 안 해준다. 그냥 내가 게으른 새끼일 뿐. 그렇게 자꾸 고통이 커졌다.
그리고 또 하나 힘들었던 점은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이 항상 홀로 음악을 했다는 거다. 음악을 같이 할 동료가 이상할 정도로 안 생겼다. 사실 베를린으로 온 이유도 한국에서 음악동료가 너무 안 생기고 계속 안 생길 거 같으니 ‘다른 환경으로 가보자! 나랑 비슷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보자!’ 하는 마음에서였다. 하지만 결국 나는 혼자 외롭게 음악을 하게 됐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따로 글을 써야할 정도로 구구절절 할 말이 많다. 그래서 나중에 따로 하겠다). 음악은 본래 여럿이 협력하는 일인데 나는 작곡, 작사, 노래, 편곡, 녹음, 믹싱/마스터링, 음원 발매, 홍보 등을 모두 혼자 해야 하다보니 굉장히 지쳤다. 더욱이 이역만리 떨어진 곳에서 고립된 상황은 엎친데 덮친 격으로 나를 위기상황으로 몰았다.
현실적인 상황을 떠나서 본질적인 얘길 해보겠다. 예술이 좋아서 예술을 하게 되는 게 예술가의 팔자이다. 근데 그 예술을 해서 내 가치를 증명하는 것은 예술을 하는 행위와는 다른 이야기라는 걸 나는 몰랐고, 또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살아간다. ‘이렇게 해야 너의 가치가 증명돼’, ‘너의 가치를 증명해야지 네가 좋아하는 걸 할 자격이 있어’, ‘한 사람 몫을 해야지’. 지금같은 자본주의 착취사회에서 이런 말 틈속에 방황하지 않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자본주의 사회는 예술가들에게 고흐 되기를 강요한다. ‘진정한 예술가는 빈곤에 시달려도 미쳐가면서 까지 자기 모든 걸 예술에 바치는 거야!’라는 말을 예술을 꿈꾸는 아이들에게 주입한다. 예술가를 착취하고 가치를 후려치는 대표적 세뇌라고 보면 된다. 그 거미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예술가들은 본질을 잊고 자신의 가치증명을 위해 필사적 노력을 하게 된다.
그 증명으로서의 성취가 남들의 인정을 받는 예술활동이다. 하지만 증명이 자기가 예술을 하는 즐거움에 앞서게 되면 예술가의 내면은 죽어갈 수밖에 없다. 물론 그 모든 걸 다 해낸 성공한 예술가들이 있다. 고흐는 죽고 나서 자신을 증명했다. 죽기 살기로 하는 게 기본이고 죽더라도 모든 걸 바치는 거. 나는 못하겠더라. 살아있는 거 자체가 견디기 힘든 유사지옥인 나로서는 무리였다. (엄살이라고 하는 사람은 그러라고 해라. 네가 내 인생 살아보면 그런 말이 나올까 모르겠네). 아무튼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는 드디어 지옥에서 나와 평온을 얻었다. 이 평온이 너무 소중해서 그 어떤 방해도 용납 못한다. 그렇게나 사랑하고 애써온 음악이라 해도 말이다. 30년을 고생해 도달한 안전한 곳이다. 필사적으로 보호할 거다.
사실 첫 연애 때 이미 경험했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무조건적인 사랑 속에서 마음의 고통이 녹아내렸던 그때, 예술로 내 마음을 토로할 마음이 잠시 사라졌었다. 그저 그 평온 속에서 평범하게 살고싶었다. 하지만 다른사람이 주는 사랑으로 인한 행복은 조건적이었고, 그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나 스스로 연인을 떠나 베를린으로 오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결국 나는 사랑을 갈구하는 어린아이인 채로 방황했던 거다. 사랑이, 이해받음이, 내 안의 평온이 우선이었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나는 이제 스스로 설 자신감이 생겼다. 외로움이 없어지지 않는다. 종종 고통스러울 거다. 하지만 이제 더이상 정서적으로 완전히 의존할 사람을 찾지 않고, 사랑이 없었던 과거를 원망하지 않고, 과거의 사랑을 그리워하며 괴롭지 않고, 곧게 깨어 자신을 의지하며 살아갈 것이다.
변하지 않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나는 숨이 끊어지기 전까지 계속 노래할 인간이라는 거다. 단지 이제 굳이 누구한테 보여주고 싶지가 않다. 사실 처음부터 그랬긴 하다. 집에서 가족들 몰래 아무도 없을 때만 노래를 불렀다. 그렇게 인정에 목말랐던 나인데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생각에 그랬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나를 순수한 즐거움과 행복, 자신에 대한 만족으로 이끌었다. 음악은 나에게 무엇보다 치유행위였다. 고통스럽고 외로웠던 어린시절, 나를 유일하게 달래준 것이 예술이고 음악이었다. 생각해보면 단순하다. 노래를 하면 숨이 들락날락하면서 정서가 안정이 된다. 명상하며 숨에 집중하는 것과 같다. 그렇게 노래 삼매경에 빠져 나를 스스로 구해냈다. 이런 순수한 열정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그래서 이제 나는 나와 음악, 둘만의 닫힌 관계로 돌아가고자 한다. 결국 음악과 단 둘이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음악을 정말 사랑한다. 슬펐던 어린 나를 안아주고 위로해준 음악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나. 이제 괴로운 인정투쟁을 끝내고 오직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음악을 하고싶다. 맘처럼 쉽진 않겠지만 어쨌든 안정적인 정서 상태를 확보했으니, 다음 단계로는 천천히, 기분좋게 흥얼거리는 느낌으로, 나의 여유속에서 음악과 예술을 하고싶다. 그게 예술의 본질이라고 믿는다. 알타미라 동굴 벽화를 그린 사람도 그랬을 거라 믿는다. 배부르고 따뜻한 환경에서, 재밌고 즐거운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을 거라고. 더 나아가 모든 예술가들이 그렇게 예술을 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싶다. 언젠가 이 에너지가 넘쳐 흘러서 내 주변의 친구들과 공동체에 닿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이제까지 정말 이기적인 이유로 음악을 해왔다고 뼈저리게 느낀다. 예술가 되기를 그만둔다. 증명이 아닌 표현으로, 인정이 아닌 공유로, 성취가 아닌 과정으로. 그저 예술을 하고 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