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오두막에서 나는 소리

명상과 분노

나는 베를린에 온 후에 평생 안 하던 명상을 하게 됐다. 그것도 엄청 진지하게. 나는 명상의 목적을 명확히 알고 그 기능을 충분히 이용하며 심리적 이득을 얻는다. 나도 내가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언제부터 명상을 시작했느냐 거슬러 올라가 보면 정확한 시점이 있다. 바로 지금 하는 이 글쓰기 기술을 배웠던 워크샵에 갔을 때 부터다. 그 워크샵에서 강사가 명상하듯이 하는 글쓰기를 가르쳤다. 이게 뭐냐면 머리에 생각이 드는 동시에 종이에 글로 쓰는 거다. 아무 필터도, 고민도 없이. 이걸 하면 진짜 명상을 한 듯 머리가 가벼워 진다. 나는 이 기술을 창의력 증진보다는 심리치료에 이용했다. 글을 가감없이 휘갈기고 나면 속이 시원해지고 내 안에 있던 솔직한 마음을 꺼내 나 스스로 진실해 질 수 있다. 그로부터 치유가 일어난다. 그렇게 일주일에 두세번을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쓰는 모닝페이지로 써봤다. 그리고 2년을 넘게 꾸준히 해오고 있다. 나는 이 글쓰기 명상의 덕을 톡톡히 봤다. 그리고 이것이 더 깊은 명상의 세계로 진입하는 계기가 되었다.

근데 그러면서 동시에 이 글의 두번째 주제인 감정, 분노가 치솟았다. 무슨 분노? 전에 한 친구가 얘기했던 말이 있다. 백인들이 머리 깎고 명상하는 거 꼴 뵈기 싫다고. 나도였다. 근데 여기 베를린에 오니까 다들 명상을 하더라. 어딜 가도 요가와 명상 강의가 가득하고, 학교 화장실에도 일상생활에 이걸 적용하는 팁을 알려주는 안내가 붙어있었다. 정신건강을 위해서 명상을 하는 게 당연한 상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한국은 전혀 아닌데. 그래서 처음엔 비웃음이 났다. ‘지들이 아시아 것을 무늬만 따라하고 있겠지, 나, 아시아인도 모르는 건데 쟤들이 어찌 제대로 알겠어’, 하고. 그리고 한번은 ‘난 아시아에서 왔지만 Zen(선)이 뭔지도 몰라’. 라는 반발심 가득한 랩을 쓰고 공연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알고보니 이 서양인들은 정말로 명상과 요가, 선의 기능을 제대로 알고, 심지어 심리치료에 효과적이라는 과학적 증명까지 해놓은 것이었다. 그래서 이 사실을 알았을 때 화가 났다. 너흰 대체 뭔데 아시아의 좋은 것만 쏙쏙 빼먹느냐고. 좋은 것만 취사선택해서 들여올 수 있는 그 서구의 권력에 식민지 국가 출신으로서 화가 났다. 그들이 전세계에 벌여놓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자본주의 때문에 아시아 수많은 국가들이 수탈당하고 전통에서 비롯한 물질적, 정신적 양식을 잃어버렸다. 강제로 침입해 온 서구의 것을 받아들이고 적응해야 했기 때문이다. 나는 학교에서 유럽, 서구문명의 역사를 고대 그리스 로마부터 배웠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아시아에서 가장 크고 문화적으로 영향이 컸던 중국의 역사와 문화 조차도 배우지 않는다. 마주하지 않을 수 없는 문화 권력의 차이다. 명상과 요가의 효과를 알고 일상적으로 실천하는 사람들도, 트렌드에 따르는 거지 직접 아시아 문화를 배운 게 아니다. 그냥 아시아 문화 중 딱 자기들에게 좋은 것만 가져와 쓰는 거다.

한국은 삼국시대 부터 고려 말까지 약 천년 간 불교가 지배적인 종교였다. 근데 지금 불교의 핵심인 명상수행이 무엇인지 아는 한국인은 불교신자 중에서도 별로 없다. 메이지 유신으로 서구문화를 받아들인 일본의 식민지배로 나라 전체가 강제로 근대화가 되었고 한국전쟁 이후엔 (대한민국 한정) 미국과 독제체제의 영향으로 전통이 철저히 구습으로 폄하되었다. 전국에 고찰이 가득하고 여전히 유지되고 있지만 신도들이 믿는 불교는 주로 민속신앙과 합쳐졌기 때문에 부처가 원래 설파한 내용이 중심이 아니다. 스님들은 물론 계속해서 수행을 하지만, 대중의 머릿 속에 불교와 명상은 쉬이 함께하지 않는다. 무려 팔만대장경이라는 유물이 있는 나라에서 경전의 내용 자체는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동양 출신이어도 유럽에 와서야 진짜 명상과 불교를 알게 된 거다.

너무 큰 충격이었다. 이런 생각이 그 명상 글쓰기 워크샵을 들었을 때부터 들면서 바로 분노가 치솟았던 거다. 나는 화를 가누기가 힘들어서 워크샵 하는 와중에도 지금 화가 나서 힘들다고까지 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백인 강사와 학생들 모두 내가 왜 화가 났는 지 짐작도 할 수 없었을 거다. 아무튼 난 그후 지속적인 명상 글쓰기를 하고 또한 명상수행에서 영감을 얻어 체계화 된 심리치료인 변증법적 행동치료를 연습하면서 이것이 정말 나에게 이롭다는 것을 인정해 나가게 되었다. 오랜 과제인 중독치료 역시도 이 방법으로 하게 됐다. 그런데 그럴 수록 나는 속으로 고통스러웠다. 한국에서는 근대화 이후 들여온 서구의 철학과 사고방식을 배웠고 그를 완전히 신뢰하던 나였는데, 오히려 여기 와서 동양 문명을 받아들이게 되는 모습이 마치 완전한 정신의 식민화 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모든 게 그들의 방식을 이후 채택하는 식으로 이뤄지지 않는가. 심지어 동양의 정신적 유산 마저도. 내 고향이 아닌 이곳 사람들의 설득으로 이걸 받아들인다는 게 수치스러웠다. 솔직히 한국친구들에게 내가 이렇게 변했다는 걸 설명하는 게 어렵게 느껴졌다. 나에게 정말 큰 변화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 친구의 말 처럼 정말 우리 대부분의 눈에 머리 깎고 명상하는 백인은 꼴 보기 싫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