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자연을 다시 만나다
도시에서 자연을 느끼는 게 가능한가? 베를린에서는 가능하다. 처음 베를린의 한 공원에서 걸었을 때가 기억난다. 공원이 그냥 나무랑 풀, 벤치 몇개와 휴지통 밖에 없었다. “여기가 무슨 공원입니다~~” 하고 알려주는 표지판도 없었고 그냥 풀숲으로 들어가면 공원이고 그 바깥은 길거리였다. 모든 식물이 그냥 자기 방식대로 우거져 있었다. 엄청 심심해보였고, 한국의 잘 정리된 화단과 깔끔하게 가지치기 된 나무가 있는 공원에 적응해있던 나에게 아주 낯설게 다가왔다. 하지만 곧 ‘이게 맞는 거지, 자연스러운 거지’ 라고 수긍하게 되었다. 여기는 이렇구나. 번잡시러운 하트모양 포토존이 있는 것보다는 훨씬 낫네. 두번 째 공원은 템펠호퍼 펠트였다. 한국에서 틴더로 만난 한 독일인이 나에게 꼭 거기를 가보라고 했다. 궁금해하면서 갔는데 그냥 엄청 넓은 허허벌판이었다. 뭐가 암것도 없었다. ‘볼게… 없잖아? 여기가 뭐가 그렇게 좋다는 거야?’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다. 곧 나는 그 템펠호퍼 펠트 근처에 방을 얻게됐다. 그리고 3년 반을 넘게 그곳에서 살았다. 그 방을 얻었을 때 지하철역이랑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걸어시 17분) 크게 맘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집 바로 앞에 슈퍼가 있으니 참 편하네~ 라는 생각을 했고, 넓은 창으로 보는 바깥 풍경이 좋고 햇빛이 잘 들어서 좋았다. 그 당시 감당할 수 있는 가격에 장기계약을 하고 주민등록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이었다. 근데 그게 알고보니 얼마나 큰 행운이었던지.
3년 반을 넘게 살면서 그 허허벌판 공원을 다시 방문하게 된 건 거기 이사 들어간 지 1년 반이나 지나서였다. 그전까지 주변을 전혀 돌아보지 않았다. 천천히 동네를 탐색할 만큼의 여유가 없었다. 그런 시기를 보냈다. 부끄럽지만, 오로지 나를 사랑할 사람 하나를 찾는데에만 매진했다. 그러다가 큰 사고가 나버렸고 나는 곧 고립된 채 위기상황을 홀로 견디게 됐다. 그렇게 재활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야 나는 그곳을 다시 걸었다. 다시 가보니 그곳은 나에게 완전히 새롭게 다가왔다. 드넓은 벌판에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었다. 탁 트인 푸른 하늘에 떠있는 하얀 뭉게구름. 잔디와 이름 모를 풀들은 초록과 황금빛 물결을 치고 있었고 모두가 그렇게 생생히 흔들리고 있었다. 자기가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나도 살아있고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었다. 2024년 6월, 그 여름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그 깨달음이 너무나 강력해서 나는 그 순간을 동영상으로 기록하기도 했다. 영상에서 나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안에' 있어!” 하염없이 들판을 거닐던 어느 순간,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아주 생생하게 느껴졌다. 초록색 풀밭에 살랑이며 피어있는 작고 이름모를 꽃들의 색깔. 하얀색, 보라색, 주황색, 분홍색, 노란색. 모든 게 갑자기 아주 선명해졌다. 그에 이어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벌과 나비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고 벌의 비행소리, 풀벌레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마치 흑백 무성영화에서 살다가 색과 소리를 되찾은 거 같은 느낌이었다. 그때 또 깨달았다. 참 오랫동안, 15살 이후 이 설레는 감각을 잃어버렸고 그제야 되찾았다는 걸. 우울증과 정신병 탓에, 이전의 내게 내 주위는 그저 무채색의 배경일 뿐이었다. 근데 그 순간부터 난 이 세계 ‘안에’ 있게 됐다. 세상은 ‘생각하는’ 내가 스쳐지나가기만 할 뿐인 ‘배경’이 아니었다. 나는 움직히는 시뮬레이터 로봇이나 상자에 든 뇌가 아니다. 나는 이 모든 것 안에서 앞으로, 뒤로, 좌우로 움직이며 이 세계 속에 살고 있었다. 날아가는 새가 저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과 그가 느끼는 감각을 상상해보고 그를 즐기기도 했다. ‘이 세상은 정말 아름다운 거야.’ 이 자연 안에서 나는 누구에게도 판단당하지 않고 나 그대로인 채로 있을 수 있다. 그렇게 템펠호퍼 펠트를 매일 걸으며 나는 병들기 이전의 순수한 감각을 되찾아 갔다. 사춘기 이후 청소년기에 나는 이런식으로 자연을 감각하고 감탄하는 아이였다. 그렇게 살아있는 생명체로서 자연에게 느끼는 일체감을 되찾았다. 그리고 그 당시 푹빠져 있던 칸노요코의 음악을 정말 오랜만에 다시 들었다. 그의 음악을 들으면 더욱더 자연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들판에 가장 어울리는 음악, Felicity를 링크하니 들어보시오.)
이 공원은 이렇게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존재의 의미도 깊었다. 이 공원은 원래 공항이었다. 2008년 까지 공항으로 운영되다가 신공항인 브란덴부르크 공항이 생기고 소음문제로 닫게 됐는데, 그때 주민투표가 있었다고 한다. 이 공항 부지를 개발할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놔두고 공원으로 시민에게 개방할 것인가? 주민들은 두번째를 선택했다. 마침 이 사실을 알았을 때가 서울혁신파크를 닫고 거기에 쇼핑몰을 세운다는 발표가 나면서 사람들이 반대의견을 내던 때였다. 나도 서울혁신파크가 계속 공원으로 있기를 바랐다. 그렇기에 베를린 시민들의 결정이 나에게 더 특별하게 다가왔다. 베를린은 그런 곳이다. 베를린 사람들이 만들어간 도시다. 한국 같으면 압살당했을 돈 안 되는 선택지를 다수가 고르는 도시. 거기가 뭐가 그렇게 힙하고 대안 문화적이고 진보적인 도시냐고 하면 나는 이 예를 말하겠다. 하지만 모든 힙한 도시가 그렇듯 베를린도 젠트리피케이션을 맞딱드리고 있다. 템펠호퍼 펠트를 개발하려는 정치적 움직임은 계속 시도되고 있다. 아파트로 공원을 둘러싼 조감도를 본 적이 있는데 정말 끔찍했다. 이 공원이 그런식으로 개발되면 아마 나는 베를린을 떠날 것이다. 나에게 이 공원은 베를린이라는 도시의 의미 그 자체이다. 그 의미가 사라지는 시점에 베를린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완성될 것이다.
이 뿐 아니라 베를린은 도시 중심부 부터 주변까지 2500여개의 크고 작은 공원과 녹지(전체 면적의 1/3)로 가득 차있다. 다듬어지지 않은 풀이 무성하고, 그늘을 제공하는 거대한 나무에는 덩굴이 우거진 채로 있다. 밤에는 어둡다. 가로등 조차 별로 없기 때문에 가끔은 무섭기도 하다. 마약상들이 활동하는 공간으로 유명한 공원도 있다. 그래서 정부는 그 공원에 울타리를 쳐서 출입관리를 하려고 한다. 베를린 시민들은 노동절 날 거리로 나와서 신나게 파티를 하는 와중에 “Görli Bleibt auf!”라고 외치며 공원을 그대로 내버려두라는 데모를 한다. 마약을 소비하는 문화가 만연하고 그것이 자유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아서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이것은 시민으로서 누구에게나 개방된 공간을 지키려는 움직임이다. 독일 분단과 통일의 상징, 예술가의 도시, 규칙에 저항하는 도시, 힙스터의 도시, 가난하지만 섹시한 도시, 클럽문화와 클럽관광의 도시. 정말 많은 이름과 개성을 가진 도시이지만 내 기준에 베를린은 자연이 있는 도시다. 도시 안의 공원 뿐 아니라 주변의 숲에도 호수가 많다. 여름이면 곳곳에 있는 작은 호수해변에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자리를 깔고 눕고 수영을 한다. 개들도 자연 속에서 신나게 뛰놀고 수영도 한다.
도시에서 이런 경험을 할 줄은 전혀 기대못했다. 덕분에 나는 한국의 도시에서 나고 자라 느끼지 못했던 자연을 다시 발견하게 됐다. 어릴 적 방학 때마다 갔던 언양 큰아버지 댁 근처에는 시냇물 처럼 흐르는 작은 계곡이 있었다. 그곳은 내 어릴적의 노스텔지어로, 사촌들과 작은 폭포에서 뛰어내리고 물놀이를 하던 곳이었다. 유년기가 지나고 십대이던 어느날, 한동안 가지 않았던 그곳이 어떤지 궁금해서 가봤더니, 모든 물이 사나운 콘크리트로 뒤덮여있었다. 그때의 상실감이란. 왜 아름다운 자연을 그대로 놔두지 않는 것일까? 겨우 자동차 한 대가 건너가는 길을 만들려고 그 물을 다 메워버렸다. 베를린의 자연은 나의 이런 상실을 채워주며 정신병 치유과정에서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공원에서 두시간 넘게 산책하고, 어릴적 타던 롤러블레이드를 마음껏 탔다. 마음이 내키면 아무데나 앉아서 명상을 하고 노래를 불렀다. 주변에는 산책하는 사람, 조깅하는 사람, 자전거 타는 사람, 윈드 서핑하는 사람, 스케이트 보드 타는 사람, 유아차가 달린 자전거에 아이들을 태우고 운전하는 보호자, 아스팔트 바닥에 낙서하는 아이들과 잔디에 앉아서 바비큐를 하고 소풍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공원의 한 부분은 모두에게 열려있는 정원이기도 하다. 비단 공원 뿐 아니라, 길거리를 걷다보면 계절마다 달라지는 가로수와 흠뻑 피어나는 꽃들이 기대하지 않은 기쁨을 준다. 아, 이 나무도 꽃이 피는구나. 이렇게 생긴 꽃이 피는구나. 일년내내 끊임없이 감탄하게 된다. 이게 베를린적 삶이다. 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어느날 이 도시를 떠난다면 이것이 가장 그리울 것이다.
템펠호퍼 펠트
칸노 요코 - Felicity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 오규원
살아 있는 것은 흔들리면서
튼튼한 줄기를 얻고
잎은 흔들려서 스스로
살아 있는 몸인 것을 증명한다.
바람은 오늘도 분다.
수많은 잎은 제각기
몸을 엮는 하루를 가누고
들판의 슬픔 하나
들판의 고독 하나
들판의 고통 하나도
다른 곳에서 바람에 쓸리며
자기를 헤집고 있다.
피하지 말라.
빈들에 가서 깨닫는 그것
우리가 늘 흔들리고 있음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