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오두막에서 나는 소리

베를린에서 보통사람이 되다

베를린에 와서 내가 평범해졌다. 내가 그냥 보통사람으로 느껴진다. 내가 특이하거나 이상한 사람, 전체 인구의 90%와 다른 10%의 사람이 아니라 다수인 90%안에 있다는 느낌. 엄청난 변화다. 이런 기분은 살면서 처음이다. 한국에서 나는 언제나 다른 존재였다. 베를린에 오기 전에 한국에서 한 친구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베를린에는 특이한 사람들, 예를 들면 퀴어와 예술가가 많을 거라서 내가 거기 가서 갑자기 평범해지면 기분이 이상할 거 같다고. 난 살면서 한번도 평범해본 적이 없어서 그게 두렵다는 말을 했다. 그 친구는 그 말을 듣고 짜증난다고 했다. 부럽고 질투나서. 걔 입장에선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특별해지고 싶다는 욕망을 가진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자기가 평범한 게 마치 결점이라는 듯이. 나도 이해한다. 나도 아예 특별해지고 싶은 욕망이 없었던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0.1%안의 능력을 가져서 자기 능력을 뽐내며 사는 것은 얼마나 달콤한 꿈인가. 나는 특히 음악천재가 되어서 명성을 떨치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진 않았다. 이 얘기는 너무 길어서 다음에 따로 하겠다.

중요한 얘기를 해보자. ‘특별해진다’는 건 사실… 남들과 다르다는 건 사실… 고통을 수반하는 일이다. 고통을 겪지 않고 오로지 특별하기만 한 일은 없다. 남들과 다르면 미움받는다 - 일단 이게 진실이다. 우리 모두는 사실 다 알고 있다. 아주 어릴 때, 유치원 무렵 때부터 아이들은 조금만 다른 아이가 있으면 그걸 귀신같이 알아차린다. 또 그게 약함으로 인식되면 그 '다른 아이'를 괴롭히고 따돌린다. 남들과 다르다는 건 그래서 항상 좋은 게 아니다 - 정도가 아니라 그냥 좆같은 거다. 특히 그 다름을 감출 수가 없을 때, 좆같음은 두드러진다. 많은 퀴어, 장애인, 인종적 소수자 등이 이걸 경험한다. 나는? 나는 다르다는 게 얼굴에 딱 드러나 있다. 나는 2살 때 교통사고로 얼굴이 눈에 띄게 변형된 채 평생 살아왔다. 내 약점을 다른 모든 타인에게 드러내놓고 살 수 밖에 없는 그 공포. 언제 어디서 ‘괴물같이 생긴 주제에!’라는 말을 들을 지 모른다는 거. 이 감각이 바로 ‘남들과 다름’에 수반되는 고통이다. 나는 장애인활동지원사 할때 장애인인 이용자들에게 감정이입을 많이 했다. 휠체어에 앉아서 지하철 엘레베이터를 타면 같이 타는 주위 비장애인들이 내 이용자를 경멸어리고 불쾌한 표정으로 쳐다보곤 했다. 그 눈빛을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다. 나 또한 그렇게 쳐다봐지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초인적이 되어야 했다. 그래야만 버티고 살 수 있기 때문에. “그게 부러우면 너도 다리를 잘라.” 이 말은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에 나온 대사로, 걷지 못하는 장애인인 조제가 자신을 질투하는 남자친구의 전여자친구가, 조제의 장애를 ‘무기’라고 일컬었을 때 하는 말이다. 무기를 휘두르는 초인. 그러니까 우리는 초인이 되어버린 거다 - 초인 되어버림 당한 거다. 그렇게 살아남은 우리와 나는 특별한, 남들과 다른 아우라를 뿜어내게 되었다. 그래서 종종 어떤 사람들이 나한테 ‘너는 특별해서 좋겠다’라는 식으로 말을 하거나 아니면 시기질투 때문에 못된 짓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게 부러우면 진짜 당신도 ‘다리를 잘라야’ 한다. 고통은 쏙 빼고 특별함만 갖고 싶은 건 완적 도둑놈 심보다. 겪어보라. 내 삶을. 그런 의미에서 정말 속시원한 대사였다. 나는 종종 이 정서를 공유하는 친구와 이 대사를 곱씹으며 큭큭 웃어댄다. 근데 여기서 이런 원한풀이를 하려던 건 아니다. 베를린 와서 내가 왜 평범해졌다는 건지, 보통사람이 된 기분이란 건 뭔지를 좀 풀어봐야겠다.

좀처럼 쉬운 답은 안 나온다. 정말 퀴어와 예술가들 같은 눈에 띄는 괴짜들이 넘쳐나서 나같은 것의 미미한 개성은 티가 나지 않는 걸까? 아니, 그보다는 내 인상, 나를 보고 받아들이는 타인의 인상이 한국과 너무 달라서이다. 한국에서 나는 굳이 뭘 안 해도 다른 사람을 압도하는 그런 인상의 사람이었다. 왜? 무조건 얼굴에 있는 흉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나는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해 화를 내며 싸우며 살아온 사람이 디폴트로 갖고있는 강한 인상을 갖고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걸 바로 알아챈다. 어린시절 '다른 아이'들을 귀신같이 구별한 거랑 똑같이. 이러한, 내가 인생을 살아온 과정에서 얻은 총체적인 분위기, 태도, 눈빛이 남들에게 너무 강렬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이게 한국에선 특히 눈에 띈다. 왜냐면 그런 한국인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한국인 인상은 대부분 순하다. 타고 이목구비가 뚜렷한 사람이 별로 없기도 하거니와, 자기주장을 굽히고 겸손하게 낮추고 사는 게 미덕인 사회라 다들 인상에 힘이 느껴지지 않고 밋밋한 편이다. 그런 사람들이 90%인 곳에 내가 있었으니 눈에 띈 거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나를 보고 첫인상이 무섭다고 했다.

근데 베를린에서 나는 완전히 ‘큐트아시안걸’이다! 도시 속에서 이동하다 보면 내가 그냥 아시아 여자1이 되어버리는 걸 느낀다. 그게 인종화다. 나를 보면 일단 동아시아인라고 인식하는 게 이 다인종 사회의 특징인 것이다. 한국에서 내가 동양인인 건 너무 당연했지 않은가… 그래서 이것은 내게 엄청난 변화다. 그리고 무엇보다 귀엽다는 인상으로 여겨지는게 가장 충격이었다. 사실 난 내 얼굴이 귀엽게 생겼다는 걸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선 그게 인상 No.1이지는 못했다. 한국에선 아무래도 나보다 순하고 두부같고 깜찍애교를 피우는, 징글징글하게 귀여운 인간들이 더 많아서다. 근데 아무래도 여기는 코 크고 눈 크고 하면서 이목구비가 또렷한 비동아시아인들이 더 많다보니 나는 특히나 ‘얼굴이 동그랗고 코가 작은 귀여운 얼굴’을 가진 사람이 되어버린 것. 그리고 아시아인들은 기본적으로 귀엽고 약한 취급 당한다(인종차별). 근데 귀엽게 여겨지는 거랑 평범한 거랑 뭔 상관인데? 상관 있다. 나는 처음으로 불특정다수에게 외모적인 호감을 사게 되었다. 나는 변한 게 전혀 없는데 사는 곳이 달라졌다는 이유만으로. 사나운 사람이 아닌, 특이하게 다르게 사람이 아닌 그저 귀여운 사람이라니. 이것은 내가 나 자신을 인식하는 방식에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다.

흔히 한국사회의 문제점으로 외모지상주의를 들고는 하는데, 보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은 외모지상주의가 아니라 ‘외모계급주의’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자기의 외모가 못나 보이지 않는 것에 매우 신경쓰고 조금이라도 못나 보이는 부분을 없애려 노력한다. 왜냐면 외모의 잘남과 못남이 곧 그 사람이 대우받을 자격이 있느냐 없느냐를 정하기 때문이다. 이것에 관한 설명은 따로 글을 써야 하니 이만하겠다. 아무튼 나는 어릴 적 흉터 때문에 괴물이라고 놀림받은 것 이후에도 외모로 인한 모욕을 많이 당했다. 나는 한국사회에서 뚱뚱하고, 얼굴이 크고 둥글고, 또 코가 오똑하지 않고 납작하고, 무엇보다 얼굴에 흉터가 있고 눈 크기가 짝짝이라서 (와, 기준이 정말 상세해! 하지만 다 사실이다. 이런 기준이 정말 세세하게 나누어져있다.) 예쁘지 않은 축에 속했고, 그래서 푸대접을 아주 많이 받았다. “내가 저렇게 뚱뚱하면 자살할거야”라고 카페 옆자리 사람이 하는 말을 들었고, 못생겼다라는 이유로 데이트 상대에게 직접적인 모욕을 당하곤 했다.

여기서는 내 얼굴에 흉터가 있고 없고가 주목할 만한 특징으로조차도 여겨지지 않는다. 이유? 사람 외모를 뜯어보면서 하나하나 평가하지 않아서. 거기다 더해, 나는 여기서 뚱뚱하지 않다. 못생기지도 않다. 미의 기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미의 기준이 편협하고 외모차별이 극심한 한국에서 못생긴 돼지 등급에 머물며 매일같이 혐오의 공기에 노출되었던 나도 여기선 당당하게 매력적인 사람으로 나 자신을 드러낼 수 있다. 나는 이제 평생 겪어왔던 모욕 대신, 오히려 생전 겪은 적 없는 친절함에 노출이 되어버리게 되었다. 물론 이건 나의 개인적 서사다. 지금 내가 하는 말과 같은 맥락을 공유하는 사람이 아주 적다. 그보다는 많은 동아시아인들은 비동아시아 국가에서 대상화 되고, 차별과 폭력에 노출되는 것을 큰 충격으로 여긴다. 나도 그런 폭력에 노출된 적이 많다. 하지만 내게는 본국인 한국조차 너무나도 위험한 곳이었다. 웃기게도 나는 내가 동양인이라서 차별을 당하는 이곳이 외모차별이 공기같던 고향보다 더 안전하게 느껴진다. 그 정도로 한국의 외모차별이 나에겐 너무 심각한 억압이었다. 동양인이라도 여기서 나는 인간으로 대해지는 느낌이다. 한국에서 외모차별을 받았을 때 나는 존엄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근데 차별과 모욕을 오랫동안 당해서 내성이 생긴 탓도 있다. 나는 좀더 잘 버티는 느낌이다.)

근데 겉으로 어떻게 대해지는 지에 의해서만 내가 보통사람이 됐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서는 내가 ‘사상적으로도’ 사회의 보통사람 기준에 맞다는 느낌이다. 독일, 그것도 베를린은 특히나 진보적이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도시로 알려져있고 서유럽 사회 자체가 여전히 68혁명의 진보적/자유주의적 유산을 가지고 있다. 이곳에서 페미니스트, 퀴어, 좌파, 예술가, 다양성 추구, 비거니즘 등등이 이상한 사람이나 불온하고 위험한 사상이 아닌 보통의 존재로 여겨진다. 한국 같으면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말하거나, 조금이라도 페미니즘적인 의견을 말하면 남자들에게 반감을 사고 곧바로 공격을 받는다. 거친 백래쉬로 인해 페미니즘은 한국에서 불온사상으로 찍혔다. 짧은 머리를 한 페미니스트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한 남자가 길에서 한 여자를 폭행한 것, 페미니즘적 의견을 소셜미디어에 게시했다는 이유만으로 마녀사냥 당하고 해고를 당한 여성노동자 이야기는 한국에서 아주 유명하다. 나도 개인적으로 페미니즘적인 의견을 개진했을 때 공적이고 사적인 자리에서 남자들에게 괴롭힘당한 적이 여러번 있다. 거기다 어떤 사람이 사회주의자/공산주의자라고 하면, 예전엔 빨갱이 소리를 들었고 요즘은 경쟁에서 패배한 패배자가 하는 자기변명, ‘지가 못난 걸 생각 안 하고 사회탓만 한다’는 식으로 조롱당한다.

근데 여기서는 그렇지 않아. 여기는 안전해. 나는 그렇게 느낀다. 그러나 이게 언제까지 갈 지는 모른다. 전세계가 그렇듯 독일도 극우적 의견이 점점 우세해지고 극우정당이 인기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난 곧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이민자를 재이주시키겠다는 AfD가 정권을 잡는다면 나는 쉽게 쫓겨날 수 있다. 이미 내 머릿 속에선 왜앵왜앵 경보가 울리고 있다. 지금 당장 떠나야 한다는. 하지만 미련하게도 나는 이곳을 떠나고싶지가 않다. 겨우 얻게 된 이 안전감을 버리고 싶지 않다. 이 68혁명의 잔재를 조금이라도 공기처럼 느끼고 싶어서 유럽에 머물고 싶다. 언제 사라지고 독가스로 대체될 지 모를 공기에서 숨쉬기 위해… 이 공기가 내게 아주 소중하다. 내가 얼마나 바라고 바라던 느낌이던가. 단 한 순간만이라도 살면서 평범해지고 싶다는 소원을 이제야 이루었다. 그리고 평범해도 상관이 없다. 내가 남들과 다르기 때문에, 그래서 그 다름의 결점을 커버하고 나를 박해하는 사람들보다 우월해지기 위해, ‘어차피 다르다면 진짜 특별해져야해!’라는 마음으로 얼마나 나 자신을 학대했던가. 이 모든 것을 이제는 그만 뒀다. (이것 또한 베를린에서 맞이한 커다란 변화인데, 또 따로 글을 쓰겠다.) 그런 거 안 해도 나는 안전하고, 평온하게 나로 살아갈 수 있다. 이것이 베를린에 와서 맞은 가장 큰 내면적 변화다.

동시에 사회적 위치의 변화도 겪었다. 쉽게 모욕당하지만 어쩐지 무서운 사람에서, 귀엽지만 만만하게 여겨지는 사람으로 내 위치가 바뀌어버렸다. 어떨 땐 나를 무섭게 만들던 그 인상을 되찾고 싶기도 하다. 나는 강인한 사람인데 그냥 귀엽고 약한 아시아 여자로 취급되는 게 불만일 때도 있다. 하지만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미 그렇게 살고 있기도 하고 그래서 내가 갑자기 특별히 불행해진 것도 아니기도 하다. 내가 동양인으로만 여겨져서 완전히 몰개성화 되지도 않는다. 여기서 보통사람이 됐다지만, 또 내가 완전히 평범해질 수가 없다. 내 삶 경험이 몸에 새긴 나라는 사람의 개성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나는 보통사람이면서도 동시에 고유하다. 그래서 만족한다. 나는 나에 만족한다. 다른 누가 어떻게 대하더라도, 나는 나에 만족한다. 그래서 다가오는 미래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난 이곳에 사는 걸 더 지속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