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오두막에서 나는 소리

억겁 시간의 고독

예전에 살던 고향 집의 내 방에는 커다란 아기 사진이 걸려있었다. 그 아기는 갓 돌이 된 나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어서 써본다. 나는 햇님처럼 환하게 웃고있는 그 아기를 싫어했다. 볼 때마다 정말 못생기기 짝이 없다고 생각했다. 왜 그 아기를 그렇게까지 싫어했을까? 지금 다시 보면 꽤 귀여울 거 같은데, 그땐 진심으로 매일매일 보던 그 아기가 징그럽게 못생겼다고 생각했다. 혐오를 넘어선, 증오에도 가닿는 감정이 지금도 기억난다. 이 근원적인 자기혐오는 지금부터 할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을까? 이것이 과연 자기혐오였을까? 그 아기는 나였던 게 맞나?

다른 애들이 싫었다. 그렇다기 보다는, 다른 애들의 태도가 정말 싫었다. 나에 비해서 그 애들은 정말이지 편안해 보였다. 뭔가 이상하게 부자연스러운 지점이 하나도 없이 속편하게 웃고 울고 그랬다. 걔네들은 진짜 물 속 물고기였다. 가만히 있으면 그게 좋은, 그냥 그런 자연스러운 상태. 편안해 보였다. 편안함이 기본이고 다른 불쾌한 자극이 다가오면 싫다고 명확히 표현했다. 불쾌를 표하는 것까지가 완성이었다. 불쾌를 표하는 데에도 망설임이 없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나는 똑같이 그 물속에 있으면서 물이 너무너무 불편했고 자주 견딜 수 없이 짜증이 났다.

너는 왜 그렇게 유별나냐는 태도는 우리 가족의 유구한 태도이다. 왜 하란대로 말을 안 듣고 네 맘대로 하려고 하냐, 너는 왜 평범하질 않고 남들 관심없는 거에 관심 가지냐… 그냥 우리 가족은 내가 평범하기를 바랐다. 마치 안 그러면 큰일난다는 듯이. 근데 그 이유는 바로 내가 평범하기 글러먹게 될 일을 겪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나를 ‘그렇지 않은 애’로 만들기 위해서. 내가 평범하고 아무 일 없이 무사한 아이여야 죄책감으로 불편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내가 무사하지 않다는 표시를 내면 언제나 그런 건 아무 일도 아니라는 태도로 일관했다. 없어야 하는 일이니까, 일어나도 없는 일로 취급했다.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낀다. 내 예술세계는 아주 먼 저 곳에 있었는데. 주위 사람들은 자기가 잘 아는, 눈에 보이는 뭐가 되면 그만이란 태도였다. 재즈 보컬리스트가 돼라든지, 슈퍼스타뭐시기에 나가보라든지, 암튼 천박하고 저질스럽기 짝이 없었다. 사실 속으로 여태 내내 이렇게 생각했다. 너희는 천박하고 저질스러워. 이 말을 온갖 곳에다 외치고 싶다. 가장 먼저 엄마에게 말하고 싶다. 왜 그렇게 수준이 낮고 멍청했냐고. 그런 주제에 왜 나보다 더 잘 안다고 확신했냐고. 세상의 모든 이상한 점, 오류와 불합리는 내가 훨씬 더 일찍, 생의 최초 부터 알았는데. 난 모든 걸 간파하고 있었다. 세상은 잔인하다. 잔인, 불합리, 모순, 위험, 폭력. 이 모든 단어를 모르고 있었음에도 나는 다 느꼈다. 그 끝을 모르겠는, 언제 끝날 지 모르는 암흑 속에 홀로 울부짖고 있을 때.

억겁의 시간을 그곳에서 버텼다. 시간과 공간의 방. 삶과 죽음 사이의 경계. 코마. 꿈. 절대적 고독과 덮쳐오는 공포. 공포. 온몸이 발기발기 찢겨지는 듯한 극한의 공포와 몸부림치는 울음. 비명을 질러대며 울었다. 엄마는 어딨냐고. 부르면 바로 와야되는 엄마가 안 왔다. 갑자기 멀쩡하던 세상에서 내가 튀어나가 이런 깜깜한 곳에 갇혔다. 아무리 울고 악을 쓰고 엄마를 불러도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공포가 더해져서 기하급수적으로 고통이 커진다. 고통 속에 혼자 있는 것. 나의 가장 큰 공포다. 죽기 살기의 공포 앞에서 염치 같은 것은 없다. 보이는 손은 바로 잡아야 한다. 그게 필요해서 그렇게 비명을 질렀으니까.

상징적인 꿈이 생각난다. 자동차를 타고 가족여행을 가다가 차가 커다란 구덩이에 빠진다. 끝을 알 수 없는 깊고 무서운 구덩이. 엄마가 “뛰어내려!!”라고 해서 나는 차에서 뛰어내려 절벽을 붙잡고 매달렸다. 다른 가족 모두 나처럼 뛰어내린 줄 알았는데, 나밖에 하지 않았다. 그들은 저멀리 깊은 구덩이로 사라졌다. 밑바닥이 어딘지 모르는 그 곳에 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 혼자 죽기살기로 붙잡을 데 없는 절벽을 붙잡고 있었다. 절대적 고독과 절망감을 느끼는 채. 꿈은 거기서 끝난다. 더이상 버틸 수 없는 고통이기에 깨어야 했다. 이 꿈은 내가 2살 때 겪었던 사고와 그 직후의 감각을 상징한다.

미스테리가 이제야 풀렸다. 내 평생의 수수께끼. 나는 왜 이리 다른가. 왜 이리 고독한가. 왜 이리 아파했는가. 왜 이리 정신병에 시달렸는가. 퍼즐이 맞춰졌다. 파묻혔던 기억이 다시 꺼내졌기 때문이다. 최근에 애인과 함께 있을 때 혼자 욕실에 갔는데,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갑자기 전애인과 사귈 때의 내가 떠올랐다. “나는 널 좋아해” - “나도 널 좋아해”. 이 말을 시시때때로 주고 받았던 기억. 그는 내 인생 처음으로 생긴, 내 모든 걸 말할 수 있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존재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내가 독일에 와서 그와 헤어지고 완전히 떨어졌으니 얼마나 슬펐겠는가. 그런 생각이 들자 마자 나는 갑자기 엄마를 부르며 우는 아기가 되어 엉엉 울었다.

S. 나는 너를 너무나 사랑했다. 그런 네가 계속 내 곁에 있었다가 영영 없어져버렸으니 당연히 온 세상을 잃은 듯 슬펐지. 나는 완전 아기였으니까. 아기의 마음으로 너를 엄마로 바라보고 사랑했으니까. 응답이 있는 사랑. 내가 부르면 언제나 달려오는 사랑. 그런 걸 원해왔어. 그래서 너와 산책할 때 그렇게나 우쭐했던 거야. 마치 주인 옆에서 산책하는 강아지 같은 기분이었다. ‘나도 이제 엄마가 있다! 나도 이제 남부러울 것 하나도 없다고! 나도 이제 내가 제일 중요해서 부르면 달려오는 엄마가 있다고!’. 그런 행복이었다. 한번도 가져본 적 없던 감각. 나는 보호받는다, 이해받는다, 안전하다. 나는 사랑받는다.

괜찮아. 정말 행복할 때 다시 떠올린 거니까 힘들지 않았다. 또다른 S를 찾은 걸까? 아니, 똑같진 않지만, G와 있을 때, 나는 또 세상 모든 근심걱정을 잊고 행복한 아기처럼 웃고 있었지. 그래서 갑자기 그 기억이 떠오른 거야. 순식간에 그때의 아기로 돌아가 울어버린 거야. 34살의 내가 눈물을 쏟아내며 엄마를 부르며 아이처럼 울었다. 그제야 이해가 되더라고. 이렇게 행복한 아기가 갑자기 아무도 없는 깜깜한 곳에서, 엄마가 언제 오냐고 화를 내고 슬퍼하며 고통 속에 울부짖었으니 그게 얼마나 힘들었겠냐고. 그래. 마침내 그 애를 마주하게 된 거다. 너무 고통스러워 파묻었던 기억을. 그 코마상태의 끔찍한 경험을.

꿈속의 일은 현실에서 벌어진 일이 아니니 그것이 현실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믿음은 거짓이다. 어린 나에겐 세상이 너무 작았으니 꿈속의 일 또한 너무나 큰 충격을 줬던 거야. 나는 30년의 세월 동안 꿈에서 겪은 고통의 위협과 영향 속에 두려워하며 살았다. 난 유독 바이킹을 타지 못한다. 롤러코스터도 타고 오토바이도 겁도 없이 타는데. 사고 당시와 똑같은 감각이 재현되니까. 낙하하는 감각만이 끔찍하게 무섭다. 바로 그 낙하 직후에 끝없는 어둠속에 혼자 남겨졌기 때문이다. 중력에 의한 스윙을 그리며 앞으로 낙하. 앞쪽으로 쿵 부딪혀서, 절단난다. 거기서 부터 끊긴다. 삶과 죽음. 그 경계에 있을 당시. 그 동물적 감각이 몸에 각인 되어 평생을 따라다닌다.

매일같이 지랄발광을 하던 어린시절도 이제 완전히 이해된다. 사고 직후 나를 지배하던, 그 몸이 터져나갈 거 같은 감각은 지금도 떠올리기만 해도 그대로 느껴진다. 깨어나고서 마주한 것은 완벽했던, 아름다운 나의 파괴. ‘나는 더이상 아름답지 않다’라는 무거운 사실. 내 얼굴이 온통 찢겨지고 기워져 조각조각 났잖아. 완전했던 세계는 부서지고 망가졌다. 그렇게 생을 시작했다. 2살 아이의 이런 존재적 고통을 아무도 몰랐다. 말로 할 수 없었던, 아무에게도 전달할 수 없었던 어린아이의 절규, 절망. 어린애가 그런 걸 느낄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한 어른들.

이후 생은 고통을 홀로 버티는 것으로 가득찼다. 체념. 아파도 아프다고 누구를 부르지 않게 됐다. 영원히 멀쩡해지지 않는 얼굴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고독과 고통. 익숙해져갔다. 이해받기를 포기했다. 그런데도 정말 이해받고 싶었다. 하지만 말을 할 수 없었다.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어 답답해서 또 그 고통이 느껴지면 악을 쓰며 울부짖는 수밖에 없었고, 그런 나를 가족과 주변사람들은 패악질하는 떼쟁이로 취급했다. 울고불고 하는 것을 멈출 때까지 혼자 뒀다. 그러니까 그 깜깜한 세계에서 일어난 무서운 일이 계속계속 반복되었던 거다. (하하… 지금 생각하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난다.)

사랑이 없었다. 아파서 울면 와서 안아주는 게 사랑의 기본이잖아. 이해도 없었다. 불편한 것, 그래서 무시하고 치워버릴 것. 그뿐이었다. 답답하게 뭐가 하고싶은대로 안될 때, 오각별을 그리고 싶었는데 육각별 밖에 못 그렸을 때, 아구아구 울고 패악을 쳤다. 아이들 심리를 다루고 정신과 전문의가 치료에 개입하는 방송을 통해, 나는 드디어 내 어린시절을 객관화 하고 내게 결핍된 뭐가 있다는 걸 자각하게 됐다. 나는 심각하게 손상된 아이였던 거다. 나는 사실 아직도 마음 속은 아기다. 그냥 엄마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아기. 언젠가부터 듣게 된 마음 속 목소리를 묘사해보겠다.

엄마…
너무 무서워.
너무 아파.
엄마… 어딨어?
어딨어 엄마?
엄마…..!!!!!!!!

(비명을 지르고 엄마를 찾는다.
비명은 점점더 커지고 슬퍼지고 고통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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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긴 세월이 지난 걸까————————————————————————————————————————————————————————————————————————————————————————————————————————————————————————————————————————————————————————————————————————————————————————————————————…)

엄마… 왜 이제야 왔어?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이 말은 평소에 가만있다가 문득 튀어나오는데 그때마다 저절로 운다.)

엄마가 나를 낳기 전에 뱃속에서 죽은 6명… 그 아이들이 나의 전생일 것이다. 그 아이들 모두 엄마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그 아이들은 엄마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집착으로 다시 생을 얻고 또 얻었다. 같은 엄마에게 다시 돌아왔다. 마침내 내가 그 모든 아이들 대신 엄마의 사랑을 받으러 태어났다. 근데 그게 잘 안 됐다. 어둠 속에서 고통받는 운명도 똑같이 되풀이된 걸까? 윤회론이 진짜일까?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면 진짜 말이 된다. 사랑받고 싶은 집착으로 인해 생을 얻고, 실패하고, 또 생을 얻고, 또 실패하고… 마침내 사랑받을 아이로 선택받아 태어난 나는 기고만장했다. 그런 기억이 어렴풋이 있다. 그러다 이렇게 됐다.

마음. 마음이 계속 무거운 채로, 어린시절, 8살 까지는 계속 그렇게 보냈던 거 같다. 그저 멍하니 세상을 관찰했다. 바라는 것이 없는 마음. 세상에 내 뜻대로 되는 게 없다는 걸 담담히 받아들여야 했다. 사람들은 근데 내 불행을 들으면 끔찍히도 불쾌해 했다. “넌 네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줄 알지?”라고 말했다. 억울하고 슬펐다. 20년이 지나 겨우 입 밖에 꺼낸 고통인데. 사실은 네가 맞다. 정확히 꿰뚫으셨어요! 사고 몇 달 후 어린이집에 처음 간 날, 엄마가 또다시 날 두고 갔을 때, 나는 하루종일 울었다고 한다. 이 기억도 같은 고통이라 지워버렸다. 다만 내 앞에 울던 또다른 아이를 노려보며 미워했던 기억만은 선명하다. 내가 제일 불쌍한 앤데 네가 뭔데 그렇게 우냐고 생각하며.

그래 솔직히 진짜, 나 불쌍한 취급당하고 오구오구 보살핌 받고 싶었다. 무슨 억지를 부려도 다 받아줬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어린애인데도 더 아기인 척 했다. 혀짧은 소리를 내며 어리광을 부리니 사람들이 나한테 언어장애가 있냐고 물어볼 지경이었다. 유아차에 타고 싶었다. 병원에 입원해서 환자복을 입고 싶었다. 그러면 다들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다정하게 잘 해주겠지. 다시 아기가 되어서 내가 못 받았던 것을 받고 싶었다. 나는 그런 걸 받아야만 충족이 되었다고. 왜 그걸 몰라줄까. 내내 어미 없이 홀로 야생에서 사는 새끼동물 처럼 살았다. 내가 아파서 꼼짝도 못하고 누워있어도 날 떠나지 않고 옆에서 돌봐주는 사람이 필요했다고. 나는 널 떠나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머리를 쓸어주는 사람. 그게 뭐 그렇게 어렵냐. 씨발.

그 사진 속 아기는 내가 사고를 당하기 전의 얼굴을 가지고, 아무 근심도 걱정도 없이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 아기가 너무나 보기 싫었던 이유는, 아무 일 없던 그때의 나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 아닐까. 완전했던 나를 영원히 잃어버려서. 그 아이는 이제 다른 아이여서. 그래서 편안하고 안전한 세상을 사는 아이들에게 열등감을 느꼈다. 가만히 있어도 이상하게 짜증이 나고 화가 치솟아, 마음이 내 맘대로 잘 안 됐다. 그런 나는 유별난 아이일 수밖에 없었다. 단 하루라도 내가 남들처럼 평범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진 아이는 수십년을 자기 마음속에서 헤맸다. 부단한 노력 끝에, 나는 다른 아이들이 가졌던 평온을 이제야 느끼기 시작했다.

이 글의 초고를 공책에 쓰면서 내내 눈물을 흘리고 끅끅거리며 울었다. 십여년 전,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료라는 책에서 하란대로 아기 때의 나에게 다정하고 따뜻한 위로의 말을 하려고 했는데, 그 애를 생각하고 떠올리자 마자 죽을 것 같은 슬픔이 덮쳐와서 엉엉 울기만 했다. 그 아이를 떠올리기만 해도 나는 버틸 수 없었다. 고통과 같은 슬픔. 나는 평생 그 그림자 안에서 살아왔다. 마침내 나는 그 아이를 마주했다. 그 애는 너무 슬퍼서 이 기억을 꽁꽁 숨기고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아했다. 그렇게 울어대면 너무 지치고 힘드니까. 그래도 이제라도 내가 나를 알아주니 다행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이 세상 모두가 너를 몰라도 나만은 너를 안다. 사랑한다. 내 아가.